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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성키

[독후감] 수저 계급론, 우생학은 아직 존재한다.

by sungkee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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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타 조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류의 2,500종 이상을 식별해 목록화하는 엄청난 업적을 남긴 생물 분류학자이자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었다. 그가 생물 분류학자가 된 이유는 자연으로부터 세상의 질서를 알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사진 속 두 눈을 보면 마치 그 진리를 찾은 것 같은 강렬한 자기 확신이 느껴진다. 그는 평생 "생명의 나무"를 완성하는 데 몰두했으며, 이를 통해 우월성을 척도로 지구 상 생물을 정렬하기 원했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가 더 우월한 종으로 발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의 연구는 우생학과 만나며 빛을 발했다. 프랜시스 골턴이 주창한 우생학을 처음 미국에 들여온 것이 바로 그였다. 1898년 우생학을 지지하는 첫 논문을 발표했다. 히틀러가 고작 10살 밖에 되지 않은 해였다. 유전적으로 "부적합한" 사람들의 대를 끊어버림으로써 인류의 퇴화를 막아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미국 내 불임화수술을 합법화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부적합한"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장애인이나 질병이 있는 자, 학업 성취도가 낮은 자, 유색인종 등이 포함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


그는 언제나 질서를 원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질서의 기본 가정부터가 오류였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조던의 연구와 신념을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과학 전문 기자 다운 제목이다.) 스포를 하자면 더이상 물고기, 즉 '어류'라는 분류가 과학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바닷속에 살며 그 겉모습이 유사한 종들을 뭉뚱그려 다같이 '어류'로 칭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내장기관을 속속히 들여다보면 조류나 포유류, 심지어는 인간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류와 우생학은 맥락을 공유한다. 자연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편의로 만들어 낸' 범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창조주의 의도인 것처럼, 우주 속 진리인 것처럼 설파하고 나와 다른 범주에 속한 생물과 타인을 멸시한다. 어류는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부적합자는 자식을 낳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말이다. 잘못된 범주는 인류의 흑역사를 창조했다. 300년을 지속한 마녀사냥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등이 대표적인 예다.

드라마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냈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에게도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마치 유전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그 편협한 범주가 타인을 멸시하고 박해해도 되는 권리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더글로리의 악역들은 대부분 '금수저' 집안의 자녀들이다. '흙수저' 주인공은 그들의 학교폭력에 저항하지만, 가난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가해자는 더욱 잔혹해진다. 결국 주인공은 스스로 학교를 떠나야 했다. 슬프게도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잔혹한 사연들이 많다.

요즘 세상에 우생학을 들먹이면 시대착오적이며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기준만 달라졌을 뿐 부유함으로 사람들을 우월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구분한다. 월급 받는 모든 직장인들을 노예라고 칭하는 엠제이 드마코의 책 '부의 추월차선'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노동 소득으로만 살아가는 일반인들을 하등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 시대의 데이비드 조던이 아닐까? 그의 주장은 모습만 달라진 우생학이 아닌가? 그는 아마 본인이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노예들이 자신처럼 변하기를 의도했을 것이다. 그것이 인류를 위한 일이라고 착각했을 지도 모른다.

현재까지도 인류는 수많은 흑역사를 남기고 있지만, 그럼에도 점차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마녀와 부적합자라는 꼬리표가 사라지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긴 것, 그리고 노예제도 폐지와 동성 결혼의 합법화 등이 있다. 이렇듯 점차 사회는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포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데이비드가 그토록 원했던 인류가 발전하는 방법은 질서가 아니라 포용임을, 다양성에 대한 존중임을 깨달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함부로 범주를 나누고 단어를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척도를 끊임없이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질서라는 명목으로 누군가를 박해하고 있다면 말이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다.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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